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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희의 車문화 여행⑤] 애증과 함께 아우토반을 달린 '폭스바겐 폴로'

기사입력 2016.10.14 10:42 / 기사수정 2016.10.14 11:03



10박 11일의 유럽 여행 일정이 절반 가까이 흘러간 9월 18일. 숙소에 들어가 TV를 켜고 뉴스 채널을 선택하니 당시 폭스바겐 CEO인 마틴 빈터코른의 모습이 화면을 채웠다. 불과 며칠 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앞두고 폭스바겐 그룹 나이트 행사에서 직접 보았던 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며칠 사이에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폭스바겐 그룹의 위용을 자랑하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얼굴과는 영 딴판이었다. 회사의 부정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표정이 결코 밝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이른바 디젤게이트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폭스바겐의 기업 이미지는 무너졌고 자동차 미디어에서는 부정적 이미지 덕분에 일종의 금기어가 되어버렸다. 공교롭게도 내가 현지에서 이곳저곳을 누비는 발로 타고 있던 차에는 폭스바겐 엠블럼이 붙어 있었다. 


출발하기 전, 외국 렌터카 가격 비교 웹사이트에서 이것저것 필요한 조건을 고려해 남자 두 명이 짐을 싣고 장거리를 다니기에 값 대비 실용성이 높은 차로 선택한 것이 바로 폴로였다. 디젤게이트가 터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탓에, 세계 자동차 업계를 뒤흔든 일대 사건의 중심에 있는 브랜드의 차를 선택해 몰고 다니는 기분은 묘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나마 곤혹스러움을 덜어주는 요소는 있었다. 빌린 폴로는 다행히도 디젤이 아니라 휘발유 엔진 모델이었다. 


폭스바겐 막내 모델인 업!에도 올라가는 직렬 3기통 1.0리터 75마력 자연흡기 휘발유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를 조합해 얹은 차였다. 또한 폴로 탄생 40주년을 기념하는 독일 시장용 특별 모델인 라운지 에디션이어서 비교적 아래 등급에 해당하면서도 전용 15인치 알로이 휠을 비롯해 전자동 에어컨과 빗물 감지 와이퍼, 터치스크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 윗급 폴로에 쓰이는 편의장비를 기본으로 갖췄다.


엔진 배기량과 출력은 우리나라 경차와 엇비슷하지만 폴로는 그보다 좀 더 덩치가 크다. 언뜻 힘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몰아보니 대부분 주행 조건에서 답답하지 않게 달렸다. 체감 성능은 국내 경차보다 나았다. 수동변속기가 제 역할을 한 셈이다. 클러치 페달의 작동감이나 기어 레버 조작감은 부드러움과 정확함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는 수준이어서 도심에서 운전하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특히 국내에서 팔렸던 1.6리터나 1.4리터 디젤 엔진 모델에 비하면 차의 움직임이 좀 더 경쾌해 모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물론 도심을 벗어났을 때에는 작은 엔진의 한계를 느낄 수 있는 상황이 이따금씩 찾아왔다. 일단 장거리 이동을 하려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아우토반에서는 어느 정도 속도가 붙고 나면 가속이 거의 되지 않는다. 가속성 위주로 변속기 기어 각 단 사이를 비교적 촘촘하게 구성한데다가, 5단까지밖에 없어서 고속 주행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요즘 흔한 다단변속기 차들은 시속 100km로 달릴 때 엔진 회전수가 2000rpm을 밑돌기 마련인데, 폴로 렌트카는 3000rpm이 넘어간다. 교통흐름에 따라 시속 130~140km를 내려면 요란한 엔진 소리를 감내해야 한다. 반응이 더디기는 해도 그 정도 속도에서도 가속을 하려면 회전수를 높여 토크를 충분히 살려야 한다. 


이 차에 6단 변속기를 썼다면 아우토반에서 고속 주행 중 가속은 무리였을 것이다. 힘과 경제성, 교통 흐름을 모두 고려해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낸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덩치에 비해 고속 주행 때 안정감이 훌륭했다. 국내에서 폴로를 시승할 때도 느꼈지만, 이 덩치에서 이만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차는 흔치 않다. 짜릿한 맛은 적지만 듬직하다는 점은 크기를 막론하고 아우토반에서 숙성된 독일 브랜드 차들의 강점 중 하나다. 


뉘르부르크링이 있는 독일 서부 산지를 향하는 길에서는 힘이 부치는 기색이 역력했다. 완만한 오르막이 길게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어쩔 수 없이 회전수를 높게 유지하며 달려야 했다. 구간 연비가 뚝뚝 떨어질 정도로 연료 소비도 많았다. 그러나 뉘르부르크링 주변과 나중에 다룰 블랙포레스트 주변의 산간도로를 뺀 나머지 구간에서의 연비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정도였다.


10박 11일에 걸쳐 1600km에 육박하는 길을 달리고 나서 차를 반납할 때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함께 느꼈다. 이렇게 만족스러운 차를 만드는 브랜드가 왜 그처럼 어처구니없고 엄청난 부정을 저질렀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올해 국내에서는 서류 부정으로 인증이 취소되어 여러 폭스바겐 차 판매가 중단되었다. 폴로도 판매 중단 모델 목록에 포함된 것을 보면서 2015년 가을의 멋진 경험을 함께 했던 그 때 그 폴로가 떠올랐다. 

글/ 자동차 칼럼니스트 류청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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