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4-16 18:05
자동차

[류청희의 車문화 여행④] '녹색 지옥' 독일 뉘르부르크링 체험

기사입력 2016.09.23 10:49 / 기사수정 2016.09.23 11:00

김현수 기자


클라식슈타트를 방문한 다음날에는 두 곳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먼저 들른 곳은 프랑크푸르트 서쪽에 있는 뤼셀스하임(Russelsheim)의 오펠 박물관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박물관 관람은 할 수 없었다. 미리 찾아본 정보에는 공장견학 코스에 포함되어 있어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둘러볼 수 없다고 되어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접 찾아가 봤지만 관람은 역시 불가능했다. 본사 안내자로부터 예약은 전화로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차를 몰고 북서쪽을 향해 아우토반에 올랐다. 목적지는 뉘르부르크링이었다.


세계의 많은 자동차 마니아에게 '성지'로 알려진 서킷 중 하나가 독일 뉘르부르크링(Nuerburgring)이다. 엄밀히 말하면 뉘르부르크링은 두 개의 서킷이 합쳐진 곳이다. 일반 레이스가 주로 열리는 GP-슈트레케(GP-Strecke)가 있고, 그보다 북쪽에 노르트슐라이페(Nordschleife)가 있다.

두 서킷은 평상시에는 따로 운영되고,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에만 연결구간을 열어 하나의 서킷처럼 쓴다. 그 중에서도 오랜 역사와 더불어 마니아들에게 전설로 여겨지는 곳은 노르트슐라이페다. 


노르트슐라이페는 전체 구간 길이가 20.8km에 이르고,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의 해발고도 차이가 300m나 된다. 100개가 넘는 코너는 반경이나 기울기가 천차만별이고, 길의 너비와 시야가 좁은데다가 안전지대도 거의 없다.

운전자에게는 위험하고 차에게는 가혹한 환경이다. 많은 자동차 회사가 새차를 개발할 때 노르트슐라이페를 시험주행 코스로 적극 활용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짧은 시간 동안 차를 최대한 혹사시키며 주행 때 운동 특성을 다듬을 수 있어서다.


그처럼 극단적인 환경인데도 마니아들이 노르트슐라이페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직접 차를 몰고 서킷을 달려볼 수 있다는 점이다. 평일 오후 폐장 전 2~3시간이나 주말 중 모터스포츠 경기가 없는 날에 한해 오전과 오후에 체험 주행(Touristenfahrten)을 할 수 있다. 체험 주행은 서킷 주행권을 산 다음 자신의 차를 가져가거나 부근에 있는 서킷용 렌터카 업체에서 차를 빌리면 누구나 노르트슐라이페를 달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노르트슐라이페 주변에는 스포츠 주행에 알맞고 서킷에서도 보험이 적용되는 차를 빌려주는 업체가 즐비하다. 그런 곳에서는 서킷 주행권 판매도 대행하고 있어, 차를 빌리면서 함께 구매해 비교적 편리하게 체험 주행을 할 수 있다. 일반 렌터카로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계약위반이기도 하거니와 사고가 나면 전혀 보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일 일정이 유동적이어서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찾는 사람이 적은 편인 평일인데다 현장에 일찍 도착한 덕분에 무리 없이 차를 빌릴 수 있었다.

내가 빌린 차는 '르노 클리오 RS200'으로, 소형차에 1.6리터 터보 200마력 엔진과 6단 듀얼클러치 변속기을 쓰고 스포티하게 튜닝한  모델이다. 그 정도 성능과 크기면 다루기도 까다롭지 않아, 처음 경험하는 코스와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환경을 고려하면 오히려 안전한 선택이었다. 국내에서 접할 수 없는 차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렌터카 업체 담당자는 입장 시간 전에 차를 빌린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고 간단한 서킷 소개와 함께 주의사항을 설명했다. 그는 영상을 보여주며 여러 이야기를 꽤 긴 시간동안 했지만, 요점은 조심해서 안전운전하라는 것이었다.

체험 주행 시간에는 모터사이클부터 미니버스에 이르기까지 종류와 성능이 각양각색인 차들이 함께 달리는데다가, 운전자들의 운전실력도 천차만별이어서 사고가 나기 쉽기 때문이다. '난장판'이라는 원색적인 표현까지 섞은 그의 설명에 바짝 긴장한 상태로 차를 몰고 노르트슐라이페에 들어섰다.


내린 비에 촉촉이 젖은 서킷을 조심스럽게 달리다 보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비디오 게임에서 수없이 달려본 코스가 그대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는 평면적으로 느껴졌던 움직임이 실제로는 온몸이 입체적으로 느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차이는 무척 컸다. 다른 서킷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오르막과 내리막, 이어지는 코너가 주는 압박감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두렵게 다가왔다. 빗길에 미끄러져 사고난 차를 보니 부담은 더 컸다. 코스를 어느 정도 익힌 다음 페이스를 높이자 점점 더 달리기가 재미있어졌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같은 코스를 달리는 다른 차들이 달리는 모습이다. 빗길인 탓에 고성능 스포츠카라고 반드시 잘 달리지도, 값싼 소형차라고 반드시 못 달리지도 않는다. 포르쉐 911과 카이맨이 내가 모는 차에 추월당하는가 하면, 더 작고 힘이 약한 스즈키 스위프트 같은 차들이 쏜살같이 앞질러 가기도 한다.

현대적인 서킷에서 접하기 어려운 굴곡과 경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코스를 달리며 몸은 이리저리 쏠리고 ABS와 TCS는 수시로 차의 위험한 움직임을 억제한다. 차를 통해 길과 싸우는 것이 일반 서킷보다 몇 배는 더 피곤하지만, 그만큼 재미도 크다.

네 바퀴를 돌 수 있는 주행권을 모두 쓰고 차를 반납하자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힘은 들어도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조건을 압축해놓은 스릴 만점의 코스에서 순수하게 운전을 즐기는 것이 정말 좋았고, 그동안 그렇게 험난한 길에서 경주를 하거나 시험주행을 한 수많은 사람들이 존경스러웠다.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는 운전하기 즐거우면서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여력이 된다면 언제든 몇 번이고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류청희의 車문화 여행①] 프롤로그, '역사를 만나러 유럽으로 떠나다'

[류청희의 車문화 여행②] 201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의 클래식카

[류청희의 車문화 여행③] 손에 잡히는 빈티지카, 문화의 장 '클라식슈타트'


글/ 자동차 칼럼니스트 류청희  

김현수 기자 khs77@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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